인생길 산책(176)

*<고향을 그리는 꿈의 노래>

민초 이 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1.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는 저기가 여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지.

2. 고개 넘어 또 넘어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노을 지는 저기가 여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날리며.

아이들이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이 동요는 아동문학가 윤 석중 작사 한 용호가 작곡을 한 동요다. 어릴 때 필자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즐겨 부르던 곡이다.

그때는 고향과 타향이 무슨 말이며 그 뜻도 모르면서 이 <고향땅이란 동요>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지금 기억에 그때의 아동문학가 이 원수 작사 홍 난파 작곡의 <나의 살던 고향>과 조 흔파의 <얄개전>등이 아삼아삼하게 뇌리를 스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 한 사람이라도 더 조국을 떠난다는 애국심의 발로일까 공부를 더 한다는 명분으로 조국을 떠났다.

진심의 마음은 공부를 못하면 좁은 땅덩이보다 넓은 땅에서 심호흡을 하고픈 어설픈 망상이 오늘의 나라는 것을 변명치 않는다.

이 땅에 정착한 후 토론토를 중심으로 한인문인협회가 창립되고 이 석현이라는 분이 주도함을 알게 되었다.

이 석현 씨는 아동문학가라는 분으로 듣고 알았는데 그 선생님도 이곳에 정착하셨음을 알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74년에 이곳 캘거리에 정착을 하고 의식주 해결에 급급하던 때 토론토 한국일보를 보고 캐나다 문인협회가 79년도에 창립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문협에서 신춘문예를 공모하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80년도에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방랑>이란 시로 가작에 당선이 되었다. 나의 작품은 이 석현 선생이 심사평을 해주셨다. 나는 그때 내가 고향이 아닌 타향에 살고 있음을 절실히 인식을 했다. 지금 타향살이 51년을 보낸 신세가 되었다.

하기 사진은 내가 19세가 될 때까지 뛰놀던 고향집의 전경이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무역을 한답시고 일 년에 3,4번은 고향을 찾았고 선조님들에게 성묘를 갔었는데 장조카가 내가 정성 들여 모셔놓은 조 부모님과 아버님 어머님의 조상님들의 산소를 가족묘지로 만들어 놓은 그 선산의 묘가 있는 산을 나와 상의도 없이 매도를 했기에 그 후에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가족 묘지의 산을 팔았으니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나의 유골이 조부모의 품에서 흙이 되리라는 망상이 재가 되어 흘러져 버렸다.

지금 기억에 나의 생가 앞 뒤에는 동산이 있었는데 아침저녁 이 산에 올라 동리 80가구의 사람들을 위한 조 용남의 <옛 생각>을 목이 터져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다시 가고 싶어도 가지 않는 육신이 되어 그 옛 생각을 흥얼거린다.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꽃댕기 매고 놀던 옛 친구 그립구나//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 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 갔나// 모두 다 어디 갔어// 나 혼자 여기 서서 지 난 날을 그리네//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날을 그리네...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필자의 옛 고향집 사진

……………………………………..

*이곳에 기사제보와 광고주를 모십니다.

*문의: 647-286-3798/ yongulee@hotmail.com

(독자 후원금 E-Transfer도 접수중)

*많은 독자분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Next
Next

정치에 관심 갖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