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 164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국문협으로>

민초 이 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1991년의 늦 가을이었다. 그 해 12월에 여성동아에서 12월의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한국에 나올 일이 있다면 여성동아의 전속 시인인 박 선욱시인과 대담을 했으면 좋겠다는 설명이다.

간단히 무슨 내용이냐고 경위를 물었더니 이해 늦은 봄에 상재한 나의 첫 시집 <로키 산마루의 노을>이 편집부에서 신간 서적 Reviw 에서 이방인의 첫 작품 시집과 지금의 생활 등 여러점이 독자들에게 흥미가 있을 것 같아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또한 원고료를 송부하고자 하는데 주소를 달라했다. 이에 원고료는 사양하며 자녀가 셋이니 자녀 셋에게 아버지의 유물로 남겨 주고 싶다 했더니 이 여성동아 12월호가 우송되어 왔다.

지금으로부터 23년전 일이 흑백영화처럼 회상이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지난 5월 3일 알버터 복합문학회 신춘문예 당선 신인들과 상견례 자리겸 5월 월례회의에서 신인으로 당선된 작가들이 한국 문단의 현항을 알고자 하여 옛날을 더듬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경험했던 문단의 실태를 여기에 기록하고자 한다.

위의 내용과 같이 여성동아의 소식등을 감안 1992년 초봄 조국을 찾았다. 그 때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기에 일년에 2,3번 귀국을 할 때였다. 귀국길에 만난 여성동아의 전속 시인 박 선욱님과 이민 생활의 실상과 시를 쓰게된 동기, 앞으로의 계획등을 이야기하며 낮에 시작한 대담이 밤 늦게 까지 소주 막걸리를 마신 기억이 새롭다.

이 대담 내용이 여성동아에 발표가 되었고 그 며칠 후 한국 문학작가회의의 신 경림 이사장이란 분이 전화가 왔다. 한번 만나고 싶다 하여 마포에 있는 출판사 정음사 뒷 골목에 있는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민 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만남이 인연이 되어 작가회의란 문학단체에 회원이 되었다. 그 때 나는 한국문단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그저 생업에 몰두할 때 였는데 처음으로 문단이란 단체가 있고 또한 글을 쓰면 등단을 해야할 필요성도 알게 되었다.

지금 기억으로 그 때 내가 제출했던 첫 작품은 <달 동네>라는 작품이였다. 이 작품의 내용은 조국 도시에는 야산 등지에 무허가 집을 짓고 하나의 동네로 형성되었는데 이 달 동네 작품 내용은 우리집은 청와대 백악관 보다 높은 곳에 살고 있다.

우리를 가난하고 돈 없다고 업수히 보지 말라는 뜻의 작품 내용이였다. 이 작품이 좋다며 민작의 계간인 작가지에 발표한다는 연락을 받은적이 있다.

늦게 알았지만 한국에는 한국문인협회라는 순수 문학을 하는 최초의 문인단체와 10여년전에 새로 창립이 된 한국문학작가회의라는 두 단체가 쌍벽을 이루고 있슴을 알게 되었다.

작가회의는 참여문학 혹은 실천문학을 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반 정부 문인들의 모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때 알게된 분 들은 고 은 시인, 신 경림 이사장 , 창비의 백 낙청 박사.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아버지 송 승원 소설가 등이였다.

이 중 내가 특별히 가까히 교류를 하였던 분은 농무라는 베스트 셀러 작품을 출판한 신 경림 이사장과 고 은 시인이었다.

신 경림 이사장은 연전에 암으로 작고를 하셨는데 내가 귀국을 하면 우리는 언제나 인사동 한정식집 <여인네>라는 식당에서 동동주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재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암으로 투병을 할 때 햄프 (Hamp seed) 를 소포로 몇번 송고한 기억이 새롭다.

이어 여인네라는 한정식집 정문에는 아주 재미있는 간판이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은 1.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 것. 2군대 이야기도 하지 말 것. 3.정치 이야기도 하지 말 것. 4.그러나 여자 이야기는 마음놓고 할 것이 쓰여있다.

이 여인네라는 한정식집 주인은 전라도 여수와 순천시 사이의 조그마한 만이 있는데 이 만이 고향이라는 소식이다.

이 식당에서 만남을 가진 후 식당 앞에는 세상 소풍이 끝이 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명시를 남기고 떠난 < 천 상병 >시인의 부인인 목 여사가 경영하는 전통 찻집이 있다.

만남이 끝나면 이 귀천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시던 추억이 그립다. 이 귀천 찻집은 현재 천 상병 시인의 뒤를 따라 목 여사도 먼 길을 떠나고 지금은 목 여사의 친척이 운영하고 있음을 지난번 방문 길에 알았다.

세월 따라 사람들이 다 떠나니 이 어찌 서글프지 않은가?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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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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