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엉겁결에 다시 따라나선 성지 순례

-주마간산(走馬看山)이지만 나름 의미 있어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랜드마크 아야 소피아 대성당

지난해 성지순례단의 일원으로 스페인을 다녀온 이후, 앞으로 성지순례는 재고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조금은 지루했던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앙이 깊지 못한 나는 기도를 하면서도 차창밖 풍경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성지순례 기회가 있다는 소식에 무엇에 홀린듯 선뜻 다시 신청하고 말았다.

대상국이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튀르키예와 그리스였기 때문이다.

0…지금은 비록 국제사회에서 그 존재감이 많이 미약해졌지만 한때 동로마의 영토이자 전세계 최강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후예인 튀르키예, 고대 철학과 문화예술의 탄생국 그리스는 꿈에도 그리던 곳이었다.

이번 성지순례는 사도 바오로(Paul)의 전도 발자취를 더듬어 올라가는 여정이었다.

바오로는 초기 기독교의 사도로, 신약성경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바오로 서신(Paul's Life & Letters)을 저술한 인물이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앞장서 박해하였으나, 예수의 음성을 들은 이후 회심하여 이후 기독교의 초기 신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0…천주교 및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기리는 바오로는 초기 기독교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대 로마의 속주였던 소아시아 키리키아 지방(현재의 튀르키예) 중심 도시 타르수스(Tarsus) 출신이다.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의를 전하려는 열정으로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를 돌아다녔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 여행과,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가운데 13편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들은 초대교회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는 선교 여행 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했다.

0…그렇게 그는 유대교와 구분된 기독교를 확립했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열정은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에 대해 구약성서를 근거로 변증하는 지성적 신앙에 뿌리를 두었다.

바오로 신학 및 서신은 기독교 교리와 역사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서 혹자는 '예수가 없었다면 바오로도 없었겠지만 바오로가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카파도키아(Cappadocia)

0…성지순례의 주된 여정은 바오로의 발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짧은 지면에 자세히 소개하기가 어렵기에 방문지만 나열해보면, 튀르키예는 최대 도시이자 역사와 아시아-유럽 문명이 교차하는 이스탄불, 바오로의 탄생지 타르수스, 바오로 전도여행의 본부라 할 수 있는 시리아 안티오키아, 그리스도의 피난처이자 지하도시인 데린구유, 자연이 빚어낸 경이의 절정 카파도키아, 셀주크 제국과 메블라나 신비주의의 이코니온, 바오로가 제1차 전도여행 때 거쳐간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목화성으로 불리는 자연의 절경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라오디케이아, 성모님의 집이 있는 에페소 지역을 순례했다.

이어 버스로 국경을 넘어 그리스로 와선 유럽의 교회가 시작된 필리피, 사도 바오로가 배를 타고 유럽대륙에 첫발을 디딘 네아폴리스, 깎아지른 절벽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수도원 집성촌 메테오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유서깊은 항구도시 코린토, 마지막으로 그리스 철학, 문화, 예술의 중심지 아테네의 신전들을 둘러 보았다.

0…각 순례지역마다 유물과 유적이 압도했거니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 깊숙이 토굴을 파고 들어가 도시를 건설하거나 험준한 바위에 동굴을 뚫고 수도하는 모습들은 나의 얕은 신앙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성지순례이긴 하지만 처음 방문한 곳이라 이곳저곳 호기심도 많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곳을 들라면 역시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세계적 명물 ‘아야 소피아’(튀르키예어 Ayasofya: ‘거룩한 지혜’라는 뜻)를 뺄 수가 없다.

0…아야 소피아는 537년-1453년까지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라틴 제국에 의해 점령된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이후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귀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1453년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하지만 2020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박물관에서 모스크 및 정교회 성당의 혼합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The Hagia Sophia Grand Mosque)'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로마 제국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크며,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0…또 하나 인상적인 곳은 예전 소아시아 중앙에 위치했던 카파도키아(Kapadokya).

대규모 기암 지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많다.

적갈색, 흰색, 주황색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수억년 전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만들었다.

0…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으로 시작됐다.

동로마 제국이 성상 파괴 운동을 일으키자 이 종파 운동을 반대한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개의 교회가 남아 있다. 이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내부의 장식이 아름답다.

0…튀르키예는 엄청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특히 오스만(Ottoman Turks) 제국은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통치하던 광대한 제국이다.

*절벽 위에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

13세기 말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건국했으며, 1354년 유럽으로 건너가 발칸반도를 정복하고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하며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1517년부터는 이슬람의 통솔자를 의미하는 칼리프국을 겸했다.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의 통치기에 절정기를 맞았고, 사회적, 행정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당대 최고의 국가로 떠올랐다. 그 강역이 가장 넓었던 17세기 초에는 32개 지방으로 구분되었다.

0…현재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지중해 주변 지역 대부분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은 무려 6세기 동안 동방과 서방의 교차점으로 기능하며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다만 오랜 평화기로 인해, 18세기 말에 이르자 오스만의 군사력은 점차 방만해졌고, 경쟁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에 비해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서구 열강들에게 연전연패하며 그 부실한 체력이 드러났고 ‘유럽의 환자’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 편에 줄을 잘못 섰다가 동맹국이 패하자 오스만 제국은 중동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고, 이 영토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이후 현 튀르키예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등장해 혼란스러운 국정을 다잡고 오스만 제정을 폐지한 후 현재의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했다.

0…아직도 영어권에서는 ‘터키’라는 국명으로 익숙한 튀르키예(Türkiye)는 2022년 6월 유엔에서 정식으로 나라 이름이 변경 승인됐다.

기존의 영어 단어 ‘터키(turkey)’는 칠면조를 뜻하는데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키예에서는 기존 국명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사와 기독교 문화를 연상시킨다는 부정적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turkey는 미국 속어로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하기도 해, 용감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 ‘튀르크’와는 배치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0…남동유럽과 서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큰 국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 튀르키예는 이 일대에서 드라마, 음악 등 문화컨텐츠 제작의 양과 다양성, 질에서 독보적인 나라로 평가받는다.

튀르키예는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이 남유럽 내 문화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그리 빈곤하지도 않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처럼 종교적으로도 그다지 보수적이지 않은 세속적인 사회 덕에 독자적인 문화산업이 발달된 나라다.

이런 덕분에 이슬람국가인데도 우리는 이번 순례에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0…성지순례를 비롯해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신 분들 중에는 평생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나라로 튀르키예를 꼽는 분들이 많다.

이번에 주만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보긴 했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긴, 워낙 방대한 역사를 단 몇줄로 줄인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리뷰하는 과정에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

0…거대한 역사 유적과 현장을 답사하면서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우를 범해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즉 하늘에 뜬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니, 지엽말단만 보고 정작 사물의 핵심은 놓쳐버려선 의미가 없다.

그러지 않으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공부)가 필요하다. 여행이든 순례든 아는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0…이번 성지순례에서 호되게 나의 뒤통수를 때린 그 말씀.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묵시 3, 15~18)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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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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