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분류된 이데올로기 편견

-진보-보수가 서로 존중하고 균형 이룰 때 미래 발전

*최강욱.최강혁 형제의 공저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책 표지

A씨는 보수적인 시골의 공무원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60대 후반인 그가 초중고교를 다닐 때만 해도 존경하는 인물로는 이순신 장군,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거의 전부였고 장래 희망은 무조건 판.검사였다.

하지만 시골에서 유일한 출세의 일은 군인(장군)이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0…그런데, A씨가 사관학교 첫여름 휴가를 나와 대학에 진학한 고교시절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도무지 못 알아들을 얘기들을 했다.

역사, 철학, 문학, 사회과학 등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데 A씨와는 완전히 딴세상이었다.

그 후 A씨는 번민의 시간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는 ‘알에서 깨어나는’ 진통 끝에 사관학교를 자퇴,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새로운 자아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0…이 세상엔 분명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강자가 있으면 약자가 있으며, 지배계층 아래엔 피지배계층이, 행복에 겨운 사람 옆엔 불행한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다.

A씨는 대학시절 우연히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걷다가 허름한 피복공장에서 나이어린 여공들이 힘들게 작업하는 광경을 보고 가슴 한편이 찡해왔고, 이때 옷깃에 달고 있던 대학 배지를 떼어 청계천 물에 던져 버렸다.

세상을 보는 A씨의 눈은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말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걷노라면 화려한 빌딩의 불빛보다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구걸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갔고, 근사한 레스토랑보다는 포장마차에서 한푼이라도 벌어보려고 얼굴이 연탄자국으로 얼룩진 이들에게 더 다가갔다.

0…가정교사로 학비를 벌던 A씨는 보수적인 집안을 생각해 적극적인 학생운동엔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가까운 친구들을 보이지 않게 돕는 것으로 선을 그어야 했다.

장차 외교관이 되리라던 꿈은 당시 사회 현실상 ‘비겁한 타협’으로 여겨져 중도에 포기했다.

그의 화두는 언제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정의로운가’로 차 있었다. 이 세상에 과연 정의란게 있기나 한가.

0…정치 사상사에서 흔히 회자되는 말 “The man who is not a socialist at twenty has no heart; but if he is still a socialist at forty he has no head”

이 말이 맞는다면 A씨는 분명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

A씨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인간이 다함께 인간답게, 소수와 약자를 배려하고, 대열의 한편에서 낙오하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가능한 균등하게 발전해가는 사회, 그것뿐이다.

0…위의 A씨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좌파’, 한걸음 더 나아가 ‘빨갱이’라 한다.

한국사회에서 이 단어들은 상대를 공격하는 필살기(必殺技)가 됐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과 토론을 하다 할말이 막혔을 때 이 한마디만 하면 끝난다.

0…한국사회에 만연한, 아니 갈수록 더 심화되는 보수-진보 이념대결과 관련해 상호 협력의 길을 모색할 기회를 제시해주는 책이 나와 ‘재미있게’ 읽었다.

딱딱한 주제의 정치사상 서적을 ‘재미있게’ 읽었다 함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친근한 용어들로 소프트하게 녹여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엮었기에 하는 말이다.

최강욱.최강혁 형제가 쓴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보거니와, 특히 아직도 할말이 없으면 ‘좌파’니 ‘빨갱이’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길 강추한다.

<프랑스혁명과 보수·진보 개념의 탄생>

프랑스혁명 당시 의회의 좌우석 배치에서 비롯된 보수와 진보.

보수는 기존 체제·전통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인데 비해 진보는 시민혁명을 통해 새로운 권리와 평등을 확장하려는 흐름으로 출발했다.

이 용어들은 단순한 정치적 진영이 아니라, 인간사회가 변화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가치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왜곡되거나 적대적 낙인으로 쓰여 온 것이 현실이다.

특히 ‘빨갱이’라는 용어는 유치하고 천박한 낙인일 뿐, 진지한 정치적 토론을 막아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따라서 좀 더 성숙한 시민적 언어로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엄격한 아버지 vs. 자상한 아버지 프레임>

조지 레이코프의 ‘부모 은유 정치프레임’을 차용해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 진보는 자상한 아버지 모델과 연결된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규율, 책임, 경쟁, 자율을 중시하며, 개인이 스스로 강해져야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본다.

반면 자상한 아버지 모델은 배려, 연대, 상호부조, 사회안전망을 중시한다. 개인의 실패는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권리가 존중받는 공동체적 환경이 구성돼야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

두 프레임 모두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지만, 서로 낙인찍는 방식의 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진보의 왜곡>

한국의 보수는 산업화·안보·반공의 토대 속에서 형성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 권위주의, 부패가 결합하며 이로운 보수의 원형을 잃었다.

진보는 도덕적 우월감, 내부 분열, 현실정책 미흡 등으로 국민 신뢰를 잃는 경우가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보수는 약자를 돌보며 책임 있는 재정과 지속 가능한 경제기반을 만드는 이로운 보수. 진보는 인권과 공공성의 확장을 현실정치 안에서 실현하는 의로운 진보다.

즉,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가치 축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ROM 한국관 상설 한인큐레이터 확보를 위한 기금 모금 캠페인

<정책과 철학: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경제와 안보를 강조하는 보수의 장점, 불평등 해소와 권리 확대를 강조하는 진보의 장점을 결합할 때 비로소 국가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공정한 시장, 투명한 제도, 부패 없는 권력구조는 보수·진보 공통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복지-증세 논쟁, 노동권, 주거정책, 언론의 책임, 검찰권 개혁 등, 가치를 둘러싼 토론이 정파적 공격이 아니라 정책 경쟁으로 전환될 때 정치가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소비자가 아닌 민주주의의 주권자로 참여해야 한다.

<미래 시민을 위한 정치적 상상력>

21세기 한국 사회는 기후위기, 인공지능 기술, 저출생, 지정학적 안보 불안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 문제들은 특정 진영의 해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보수는 공동체적 포용성을 키우고, 진보는 국가 운영 능력과 현실적 시스템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본래 목적은 모두 국민을 더 인간답게, 더 안전하게, 더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로서, 혐오와 낙인이 아닌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극단적 진영 논리를 넘어, 서로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고 경청하는 태도로 양 날개(보수와 진보)를 균형 있게 펴고 더 높은 비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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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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