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나에게…!”

-건강검진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그것’

-연옥(煉獄) 같은 시간 속에 깨달은 소중한 교훈

*아름다운 봄날 들녘

‘몸 되어 사는 동안/ 시간을 거스를 아무도 우리에겐 없사오니/ 새로운 날의 흐름 속에도/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희망, 당신의 은총을/ 깊이깊이 간직하게 하소서/ 육체는 낡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웁고/ 시간은 흘러가도 목적으로 새로워지나이다’ (김현승 시)

내 나이 69살, 내년에 고희(古稀)를 맞는다.

당나라 두보(杜甫) 시인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읊었지만 요즘 세상에 70살은 예전의 40 정도에 비할까.

0…지난 3월 어느날, 가정의(Family Doctor) 사무실로부터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보라는 메시지가 왔다.

통상적인 혈액검사 외에, 이젠 나이도 있고 하니 초음파(Ultra Sound) 검사도 해보라고 했다.

웬 초음파? 그건 임신한 여성들이 태아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몸에 아무 이상도 없는데 귀찮네… 그래도 한번 받아보라는 아내의 채근도 있고 해서 날짜를 잡았다.

0…난생처음 받아보는 초음파.

검사 기사가 나의 맨몸 상반신을 이리저리 기기로 더듬다가 왼쪽 허리부분을 문지르며 “괜찮냐?”고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I’m okay”

검사가 끝난 후 내가 “무슨 이상이라도?” 물으니 기사는 의사로부터 곧 연락이 갈거라고만 했다.

0…며칠 후 날아온 메시지가 매우 찝찝했다.

상복부에 무슨 mass(덩어리)가 보이니 급히 CT 촬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며 “뭐 그런가보다” 했다.

다시 며칠 후 종합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했고 수일 후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검사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은 큰딸이 병원에 몇번이고 재촉을 한 덕분이다)

0…“8.3cm mass in the left psoas muscle, suspicious for sarcoma or other malignancy…”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이럴리가…”

평소 규칙적인 생활에 3쾌 (잘 먹고: 쾌식,快食) 잘 자고: 쾌면,快眠) 화장실 잘 가는: 쾌변,快便)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전에는 술을 다소 과하게 즐겼지만 지금은 많이 절제하며 소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중인데…

0…좀 더 자세한 진단을 위해 부랴부랴 조직검사(biopsy) 날짜가 정해졌고, 수일 후 다시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심성이 여린 아내는 겉으론 “아무것도 아닐테니 마음 편히 받으세요” 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까맣게 타고 있음을 내가 왜 모를까.

이런저런 수술 사전절차 후 CT 기계 앞에 엎드리니 무슨 주사 바늘 같은 것이 허리 부분을 4회 정도 찔렀다.

검사의사는 조직(tissue)을 추출했고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0…이때부터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일주일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길을 걸어도, 잠자리에 누워도, 온갖 불길한 생각만 다 들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착해빠진 아내는 이 험한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귀염둥이 손주들은…

나의 그동안의 행적은 올바른 길만 걸어왔나, 어느 누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모질게 하지는 않았나,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인색하게 굴지는 않았나, 우선 편하자고 비굴한 길을 택하지는 않았나,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화를 내지는 않았나…

0…그런 한편으로, 현재 몸의 컨디션은 전혀 불편한 곳이 없는데, 몸에 무슨 덩어리가 있단 말인가. 아마 별일 아닐 것이다, 애써 위안을 삼아보기도 하는 등 온갖 상념이 롤러코스터 같이 널을 뛰었다.

별일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앞으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살리라, 철석같은 다짐도 해보았다.

며칠 사이 갖은 걱정과 번민, 불안, 초조 등이 뒤섞인 가운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각종 기기(컴퓨터, 셀폰)와 은행계좌 등의 비밀번호, 나의 연락처 등을 적어 놓기도 했다.

0…또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시면 조언이라도 듣기 위해 몇분에게 나의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이00가 몹쓸병(암)에 걸렸다더라” 까지 확대됐다.

어느 어르신은 당신의 경험과 비슷한 것 같다며 “그거 별거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주셨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0…시련의 시간이 흐른 후 엊그제, 기다리다 못한 큰딸이 병원측에 결과를 문의했고 병원에서는 오전 일찍 가정의에게 검사서류를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오전이 훌쩍 지나도 가정의에게선 아무 연락이 오질 않았다.

우리는 “급한 상황이라면 빨리 연락을 할텐데 그렇지 않은가보다” 라며 애써 위안을 하기도 했으나 초조한 마음은 진정시킬 도리가 없었다.

참다 못한 아내가 “이러지 말고 family doctor 오피스에 직접 가보자”고 했다,

나는 “Appointment를 안하면 만나주지 않을텐데” 라면서도 이판사판이니 아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0…가정의 클리닉에 들어서는 우리들의 속마음은 이미 숯덩이가 돼있었다.

“만약에…”

나의 운명은 의사의 단 몆마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차트를 쑥 훑어본 젊은 가정의…

“Benign tumor(양성良性 종양)입니다. 즉, 별것 아닌 것으로 나왔습니다. 적당한 날을 잡아 떼어내면 되니 걱정하지 마세요.”

0…그 순간 아내와 나는 부둥켜안고 울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한순간에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

갑자기 세상이 달라져 보였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이 그렇게 새삼스러울 수 없었다.

봄이 오는 토론토의 거리는 활기에 차 있었다!

0…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이 참 많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나의 개인 이야기를 공유해본다.

첫째, 평소 자기 관리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인 가족을 비롯해 모든 인간관계 속에 살아간다.

따라서 내 몸은 혼자가 아니라 주위의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 몸이 아프면 나의 고통뿐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0…특히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의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살아줘야 할 나이가 있다.

적어도 부모보다는 오래 살아야 불효가 안되고, 또한 자녀가 모두 출가할 때까지는 살아줘야 한다.

식생활과 의료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본인의 처신 여하에 따라 수명조절도 가능하다. 여기서 바로 평소 자기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물론, 자기관리를 충실히 했음에도 병마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사연도 많으니 그런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다)

0…수신(修身)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정으로 가족과 주변을 사랑한다면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부터 잘 다스릴 일이다.

둘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자.

물론, 이게 말이 그렇지 실제로 당하면 panic으로 발전하기 쉽지만 어쨌든 침착하게 대처하자.

셋째, 어떤 경우에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굳센 믿음을 갖자.

나의 경우,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들 속에도 아침에 일어나 힘차게 체조를 하고 일상생활을 하니 기분도 좋아지고 “그까짓것 별거 아닐거야”란 믿음이 들었다.

0…올봄의 하늘과 잔디와 새싹들이 더욱 푸르고 종달새 노랫소리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잠시나마 고난의 시간 속에 매사에 감사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을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경종에도 새삼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동안 저에게 크나큰 용기와 진심어린 격려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행복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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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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