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내가 15년전 다른 언론사에 근무할 때 쓴 칼럼이 있었다.

제목이 ‘그들만의 잔치’였는데, 어쩜 그때와 지금 상황이 그렇게도 달라진게 없나 싶을 정도여서 새삼 놀랐다.

이에 내용을 조금만 수정해서 올려본다. (하긴 그게 그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

0…이런저런 교민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우선, 전체적인 행사 분위기가 너무 격식에 치우친 나머지 왠지 어색하고 딱딱하다.

가끔씩 참석해보는 현지(주류)사회의 자연스런 분위기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인행사의 경우 참석자들을 등급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0…대부분의 한인행사에서는 으레 ‘헤드테이블’이 정해져있고 여기엔 예약(reserved) 푯대가 꽂힌다.

이른바 귀빈(VIP)석인 이 자리는 대개 총영사, 한인회장, 평통회장, 향군회장, 여성회장, 노인회장 등등…의 단체장, 지.상사 대표 등이 단골손님으로 앉는다.

그 자리에 일반인들이 앉을 경우 무안을 당한 채 쫓겨나기 십상이다.

0…본격 행사에 들어가서는 한인회장과 총영사 등의 인사말이 이어진 다음, 주최 측이 ‘주요 내빈’들을 소개한다.

좁은 이민사회에 웬 ‘회장’과 ‘이사장’ 직함이 그리도 많은지.

이름이 불린 인사들은 자랑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까딱한다.

이들은 이른바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직함이 없는 일반인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들만의 잔치’가 시작된다.

정작 한인사회의 대다수 주인공들은 들러리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0…한인행사가 잇달아 열릴 경우 방금 전에 소개됐던 인사가 다른 행사장에 나타나 다시 소개를 받는 웃지 못 할 광경도 벌어진다.

어느 때는 전직회장까지 소개를 하니 시간이 몹시 지루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소개를 하려면 특이한 외국손님이라든가, 고령자 등 좀 특징 있는 사람들을 하든지, 특히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단체의 사람들을 ‘주요인사’라고 소개할 땐 낯간지럽기 짝 없다.

좁은 이민사회에서 행사참석자들은 대개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새삼 누구를 소개하는지. 

0…엊그제 토론토 한인회의 2026년 신년하례식 행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웬 내빈소개가 그리도 긴지, 한인사회에서 이름께나 알려진 인사들을 장황하게 호명하다보니 아까운 시간만 낭비됐다.

굳이 소개를 하려면, 매년 떡국떡을 제공하는 평화식품 구자선 대표와 김치를 제공해준 천지농장 강신학 대표 정도만 하면 충분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도 모를 사람들을 내빈이라고 쭉 열거하는데 참 가관이었다.

이를 본 한 참석자는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한인들이 내빈이지 VIP가 따로 있나”라며 혀를 찼다.

0…특히 ‘내빈’으로 소개받은 이들이 과연 존경받는 인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부 단체장 중에는 본연의 임무보다도 단체장 감투를 과시하려 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은 테이블에 자기의 명패가 없으면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무슨 알량한 감투라고 앞자리를 차지하려 안달인지. 자기가 잘나서 직책을 맡은 줄 착각하고 있다.

0…이런 꼴불견이 역겨워 한인사회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특히 동포사회에서 존경받을만한 인사들은 좀처럼 나타나질 않는다.

몇몇 인사들의 일그러진 행태가 그들을 한인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0…더욱이 어떤 한인행사에서도 장애인이나 노약자에 대한 배려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고도 한인사회가 성숙했다 할 수 있는가. 이런 허울 속에서 무슨 품격을 논할까.

선진국에서 오래 살아왔으면서도 아직도 설익은 권위의식에만 젖어있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0…앞으로는 내빈소개 좀 생략하든지, 한인행사에 처음 참석한 사람이나 뭔가 좀 특별한 사람을 소개하면 어떨지.

그러면 앞으로 그돌도 소속의식을 갖고 참여할 것이다.

한인사회가 보다 성숙하려면 지도급 인사들부터 그 알량한 권위의식을 던져버리고 일반동포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범을 보여야겠다.

0…좁은 이민사회에서 ‘한자리’ 하는 것은 개인적 영광일지 모르나 그것은 그들만의 직함일 뿐이다.

그러니 행사장의 상석이나 기웃거리고 자기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겸손하게 자세를 낮출 일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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