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권력이다
-다른 모든 능력에 앞서는 ‘영어실력’
-늦었다고 생각될 때 악착같이 매달려야
나는 명색이 영문과 출신이다.
중.고교 시절 영어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대학 학과도 앞뒤 잴 것 없이 영문과를 택했다.
영어라면 자신이 있었고 한때 시사영어 전문 서적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금 그 회사는 재벌 반열에 올라 있다)
0…캐나다 이민의 동기도 영어가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알량한 봉급생활로는 아이들의 엄청난 영어 과외비를 댈 자신이 없었고 어줍지도 않게 외국인 불러다 한시간씩 회화를 배운다고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았다.
평생 영어 때문에 시달릴 아이들을 생각할 때 차라리 영어 쓰는 나라에 가서 사는게 낫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0…미련없이 이민봇짐을 싸들고 왔고 캐나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나름 영어에 자신이 있던 터라 모든 정착 일을 스스로 해보겠다며 여기저기 부딪쳐 가면서 호기도 부렸다.
첫 정착지도 영어만 쓰기 위해 한국인이 없는 지방 소도시로 정했다.
0…하지만 곧 모든게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보니 우선 일자리를 찾게 됐고, 기자 노릇 외에는 달리 재주가 없는 나는 다시 한국신문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영어를 정복하겠다던 의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영어실력은 갈수록 줄었다.
한인직장에, 한국음식에, 한국사람에, 한인사회에, 한인성당에…
영어를 별로 쓸 필요가 없는 날이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0…오가는 차안에선 뉴스채널을 고정시켜놓고 계속해서 뉴스를 들으니 시사흐름엔 어느정도 통달해있다.
하지만 어쩌다 현지인(native English speaker)을 만나면 일상적 대화가 참 곤혹스럽다.
무슨 할 얘기도 없거니와 영어단어를 머릿속에서 짜내 입으로 발음하려니 버벅대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배운 단어들은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것들이지만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들이어서 현지인과 대화를 이어가기가 난감하다.
0…우리는 특히 모국어의 중요성을 감안해 집에서는 아이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자연스러운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우리 부부의 영어실력이 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두 딸이 모두 출가해서 우리 부부만 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집에서 영어로 대화할 계제는 아니다.
하루 일상이 모두 한국식으로 이루어지니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0…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가 일(부동산중개인)을 하면서부터 영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25년 전 처음 이민 올 때만 해도 아내는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교시절 다른 과목, 특히 수학은 최상위권이었지만 영어는 아주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무조건 단어를 외워야 하는 그 비논리가 싫었다나…)
0…어쨋든, 아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영어였지만 상황이 이리 되고 보니 안 할 수가 없게 됐고, 지금은 꽤 잘 하는 편이다.
외국인과 전화로 deal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노라면, 아주 유창한 정도는 아니지만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참 신기하고 ‘기특’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언어는 필요이자 습관인지라 자꾸 써버릇하면 늘게 돼있구나 한다.
0…이민초기만 해도 연조가 오래된 선배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배들 가운데 많은 분이 영어를 거의 못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왜 그럴까,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젠 이해가 간다.
언어란 일상에서 자주 써야 느는 법인데 우리들은 굳이 영어가 필요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ROM 한국관 상설 한인큐레이터 확보를 위한 기금 모금 캠페인
0…한인사회 행사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 많다.
특히 외국인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한인단체 지도자란 분들이 영어가 미숙해 움츠러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딱딱하고 굳은 발음은 그렇다 치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본인 스스로 파악이나 하고 발언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많은 청중 앞에서 긴장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감안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0…더듬거리는 한인들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현지 정치인들은 기다렸다는듯, 속사포 같은 속도로 스피치를 해댄다.
자신감 가득한 톤(tone)으로 행사장 분위기를 확실하게 압도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0…한인들이 현지인에 비해 뒤지는게 무언가?
딱 하나, 바로 영어다!
모든 능력이 앞서도 영어가 달리면 다른 능력도 덮힌다.
“그 사람 다른건 몰라도 영어는 잘해”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능력자’로 평가받는다,
영어는 곧 권력인 것이다.
0…트럼프 같은 사람은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기자가 질문을 하면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못 알아 듣겠다”고 굴욕감을 준다.
캐나다는 그나마 다민족 국가라고 해서 이민자들의 서툰 언어에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면전에선 만인평등한듯 친절하게 대할지 모르지만 돌아서면 우습게 여길 것이 뻔하다.
0…한인 커뮤니티라고 해서 우리끼리만 모여 사는 소공동체가 아니며 현지인과 어울려야 스케일도 커지고 당당하게 캐나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자면 부지런히 영어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말이 자연스럽게 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무슨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겠나.
0…4반세기를 영어권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 영어를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이요 ‘3류 시민’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배움에 늦음이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가 바로 악착같이 매달릴 때다. (南村)
……………………………………..
*이곳에 기사제보와 광고주를 모십니다.
*문의: 647-286-3798/ yongulee@hotmail.com
(독자 후원금 E-Transfer도 접수중)
*많은 독자분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