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

-“100% 순결해야” 프레임에 갇힌 진보

-이상 실현하려면 ‘완벽주의’에서 빠져 나와야

*박원순 전 서울시장, 노무현 전 대통령,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이민생활 4반세기가 지나가는데도 나의 머릿속엔 여전히 한국뉴스가 더 궁금하다.

캐나다에 큰 뉴스거리가 없는 것도 한 이유이긴 하다. 여기선 생활뉴스나 사건사고가 주요 이슈이고, 요즘엔 트럼프와의 관세전쟁이 한창 미디어의 관심사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이긴 하지만, 미디어 관점에서는 기사 쓰기가 밋밋하고 언론사간 (특종)경쟁도 없어 게으른 느낌마저 든다.

0…아침에 일어나 한국의 다이내믹한 뉴스들을 체크하노라면 고국은 가히 미디어 천국이라 할만하다.

엊그제는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소식이 톱뉴스다.

한마디로 이 ‘사건’은 이제 갓 출범한 새 정부에 작지 않은 부담을 안겼다.

0…그 후보자는 이른바 ‘보좌관에 대한 갑질’이 문제가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미안하지만 한국의 정치.사회적 문화와 풍토상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삼을 일인가.

전 정부의 기상천외한 기행들에 비하면 정말 티끌에 불과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을텐데 일이 그토록 커진 것은 왜일까?

나는 한마디로, 도덕적 결벽증과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진보진영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0…손을 씻고 또 씻어도 개운치 않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샤워실부터 달려간다.

속옷이나 티셔츠는 한번만 입어도 바로 빨아야 한다.

집안이 아무리 깨끗해도 빗자루로 계속 쓸고 걸레로 반복해서 문지른다.

밥상 치우기가 무섭게 설거지를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물건이 조금만 비뚤어져 있거나 정리되지 않으면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한다…

0…결벽증(潔癖症, Mysophobia)은 지나치게 깔끔함을 추구하는 정신상태를 말한다. 선천적 성격의 경우 Fastidiousness라는 용어를 쓴다.

굳이 병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심리상태가 늘 평온하지 않기 때문에 증상이 심각해지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강박관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벽증은 업무든 환경이든 모든 것이 깨끗하고 완전무결해야 안심한다.

그래서 결벽증을 가진 사람은 가족과 동료 등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 쉽다.

대충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끄집어내어 완벽하게 만들려다 보니 주변인과 부딪히기 쉽다. 

0…특히 도덕적으로 결벽증을 지닌 사람은 사소한 과오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의 허물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괴로워 하며 정신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채 때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온갖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정치판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에게 도덕적 결벽증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노회찬 의원이 그랬고 박원순 시장이 그랬다.

이들 도덕 청결주의자들은 조금의 흠결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고 중압감을 견뎌내질 못한다.

결국 구구한 해명보다 차라리 죽음으로써 할 말을 대신한다. 

0…결벽증과 극단적 선택은 대부분 진보 인사들에게 나타난다.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보수진영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도덕적 청결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히 깨끗해야 하고 검은 돈은 한푼도 받아선 안되며 여자도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칼날같은 규범이 적용된다.

이런 강박증이 때론 지극히 양심적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수구세력에서 자살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0…특히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최고수준의 순결성을 강요받으며, 같은 사안이라도 보수인사들보다 더 큰 충격과 실망감을 국민들에게 안겨준다.

그들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지만 대중은 그들도 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크게 감안하지 않는다. 

진보진영은 태생적으로 도덕적 순결주의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부패와 비리를 통치수단으로 거리낌 없이 행사해온 수구세력과 맞서 싸우려면, 국가전복세력이라는 공격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면 도덕적 명분은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0…보수언론과 검찰, 자본과 손잡은 수구세력은 도덕적 자기검열, 도덕적 진보순결주의가 민주진영을 한방에 분열시킬 수 있는 아킬레스건임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티끌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다.  

조국과 정경심 부부가 지위를 이용한 사모펀드로 막대한 부를 쌓은 게 사실인가.

윤미향이 후원금을 횡령하여 딸을 유학시키고 집을 두 채 세 채 매입한 게 사실인가.

박원순 시장의 비서는 사과를 원했다면서 왜 성폭력상담소가 아니라 고소라는 법적 수단을 선택했을까.

0…수구세력의 프레임 기술은 점점 지능화되고 교묘해지는데 진보는 여전히 초보적인 도덕 순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범민주진영은 진보순결주의와 결별해야 할 때라고 본다.

저쪽은 교묘하게 세련된 방법으로 ‘도덕’이라는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있는데 범생이 콤플렉스에 찌든 진보진영은 미련한 순결주의를 고수해서는 이길 수 없다.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말고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한다. 좀 ‘세속화’될 필요가 있다. 

0…내가 김어준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싫어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바로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너면에 있어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그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점 하나, “에이 0발, 그래 내가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식으로 던지는 ‘배째라 화법’이다.

순결주의에서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아는 진보진영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래! 배째, 어쩌라고, 책임지면 되잖아” 하는 깡이다.

0…진보도 저들처럼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봐야 눈꼽만큼 밖에 못할 테지만 그거라도 좀 대담하게 대처해야 한다.

진보여, 이젠 그 덜떨어진 도덕적 순결주의에서 벗어나자.

‘인간다운 세상’을 실현하려면 때론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는 맷집이 필요하다.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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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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