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의 추억

-오랜만에 돌아본 그리운 고국의 산하들

-한려수도의 그림같은 풍광 이면엔 서글픔도

*통영 한산도의 거북선 등대

‘노을 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 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 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마중 섬 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 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이미자 ‘삼백리 한려수도’)

0…오랜만에 고국을 찾았다.

캐나다 이민생활 26년 동안 서너차례 한국을 방문하긴 했지만 대개 일주일 정도만 머물다 오곤 했는데, 이번은 칠순도 맞고 해서 큰맘 먹고 한달여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사실 이번 고국 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기 보다는 내가 살던 시골 고향이며, 부모님이 누워계신 선영, 다니던 학교 등을 찾아 추억을 더듬어 보려는 생각이 더 많았었다.

0…촌스런 얘기지만, 고국의 발전상은 일일이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교통카드 한장이면 전국 어디서나 지하철과 고속.시외버스를 편리하게 갈아탈 수 있고, 음식값도 캐나다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니 큰 부담이 없었다.

도시엔 거리마다 인파가 넘치고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늘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들 움직였다. 한마디로 생동감이 넘쳤다.

0…하지만 공기는 캐나다(토론토)에 비해 확실히 좋질 않았다.

하루종일 도시 거리를 헤매다 숙소에 돌아오면 목이 컬컬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얼굴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풍경이 퍽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0…참으로 오랜만에 찾아본 내가 살던 고향은 다른 허름한 집들이 들어서 을씨년스러웠고, 대청호반의 부모님 산소는 왜 그리도 외진 곳에 모셨는지 수풀을 헤치며 길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따르고 상냥했던 50대의 조카가 산소 길을 안내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마 적막강산 속의 산소에 소줏잔을 올리고 큰절이라도 바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0…전에부터 마음 속에 그리며 찾아보고 싶던 고국의 산천이 몇 있었다.

그중에 이번 고국여행에선 내가 태어나 자란 대전을 비롯해 전북 고창 선운사, 경남 하동 쌍계사, 섬진강, 화개장터, 통영, 강원도 설악산과 속초 등을 찾아갔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경남 통영(統營)을 들지 않을 수 없다. ‍ ‍

*통영항에서 한산도 가는 카페리

0…한려수도(閑麗水道)의 심장부인 통영은 조선 시대 충청·전라·경상도 수군을 총괄하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면서 '통제영'을 줄여 통영이라 칭하게 됐다.

‘동양의 나폴리’(Naples of the Orient)라 불리는 통영은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에서 유래된 지명을 품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1955년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됐고, 1995년 통영군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통영시'로 정착됐다.

0…통영은 한마디로 격조높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다.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등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문화계 거장들이 통영에서 태어나 창작혼을 불태웠다.

점점이 떠 있는 570개 섬들이 작가들의 감성에 불을 지핀 것일까, 부드러운 산세와 호젓한 항구가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준 것일까.

천재 시인 정지용은 1950년 통영기행문에서 “금수강산 중에도 모란꽃 한 송이인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한산도에서

0…한국 대하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인 <토지>를 집필한 한국 문학계의 거장 박경리,

<꽃> 등의 작품을 남기며 한국 순수시의 지평을 넓힌 시인 김춘수,

<깃발> <행복> 등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과 서정성을 노래한 시인 청마 유치환,

동양과 서양의 음악 기법을 완벽하게 융합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현대 음악의 거장 윤이상 작곡가,

통영의 쪽빛 바다와 섬, 한국적인 전통 문양을 화폭에 담아낸 '바다의 화가' 전혁림…

0…그런가 하면 6.25 발발 후 북한 원산에서 피난온 화가 이중섭은 1952년부터 2년 여간 통영에 머물며 <흰 소>,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를 비롯해 다수의 대표작을 남겼다.

전쟁 피해가 적고 자연과 먹거리가 풍부한 통영은 창작 활동에 적합한 환경이었으며, 이 시기 이중섭은 김용주, 전혁림, 장윤성 등의 화가와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 같은 문인들과도 교류했다.

통영은 이중섭이 외로움을 견디며 예술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자양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통영 시가지와 한려수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미륵산 정상

0…통영에서 태어난 소설가 박경리(1926~2008)는 살아생전 “통영 사람에게는 예술가의 DNA가 흐른다. 이순신과 300년 통제영 역사가 통영 문화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의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에는 어김없이 고향땅 통영이 등장한다.

0…통영을 유난히 사랑하고 평생동안 고향하늘을 그리워하며 살다 떠난 비운의 천재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이야기는 기념관을 찾은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통영에서 그 귀중한 정신적, 정서적인 모든 요소를 내 몸에 지니고 그것을 나의 정신과 예술적 기량에 표현해 나의 평생 작품을 써왔습니다. 유럽에 체재하던 38년 동안 나는 한번도 통영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파도 소리는 나에겐 음악으로 들렸고, 그 잔잔한, 풀을 스쳐가는,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내겐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 관현악으로 절묘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로 세계 음악계의 극찬을 받은 거장.

하지만 1967년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다 이국땅에서 눈을 감은 비운의 천재였다.

0…쪽빛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에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인 한려수도의 눈부신 다도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임진왜란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역사적 아픔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 이후의 비극까지 겹겹이 쌓인 서글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국의 어느 곳을 가든 나름대로의 사연이 없는 곳이 있으랴만, 통영에서 보낸 나흘간의 일정은 외국의 그 어느 명소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고 구구절절한 스토리텔링 체험으로 내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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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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