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심당에 가보셨나요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해 직원 4백여명의 기업으로

-경쟁이 아닌 상생, 독점이 아닌 나눔의 경영 ‘타의 모범’

*대전 은행동에 위치한 전국적인 제빵제과점 ‘성심당’ 본점에 손님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모습

누구에게나 고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안식처일 것이다.

특히 그곳을 떠나 살면 언제나 간절히 그리워지는 대상이 바로 고향일 터이다.

더욱이 나처럼 고국을 떠나 타지에 사는 이민자에게 고향은 꿈에도 잊지 못할 어머니 품속같은 존재이다.

0…나의 고향은 충청도 대전이다.

벼르고 벼르던 고국 방문.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특히 떠난지 30여 년이 지난 내가 살던 고향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릴적 철모르고 뛰어놀던 그 동네, 그 초가집이 너무도 그리웠다.

0…하지만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그 집은 거기에 없었다.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나…’

내 심정이 딱 이랬다.

0…서울로 학교를 다니고 군생활을 하면서 드나들었던 대전역에서부터 목척교를 지나 구 충남도청, 보문산까지 천천히 걸으며 예전 청춘시절 기억을 되살려 보려 했으나 그 당시 풍광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전 목척교에서

그런데! 옛친구와 함께 갔던 두부두루치기 (광천)식당이 아직도 거기에 있어 너무도 깜짝 놀랐다.

간판과 외관은 허름하지만 그 얼큰하고 묘하게 당기는 (호되게 매운) 두부두루치기 맛은 여전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로 메어 터졌고 겨우 얻어 앉은 구석자리 식탁에서 향수의 맛에 흠뻑 취했다.

0…하지만 그 향수의 맛은 이내 눈물로 변했다.

둘도 없던 그 친구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떠난지 40여년, 식탁 앞에 친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앉아 있는 듯한 환상이 아른거렸다.

*선화동 광천식당

0…대전 도심지 길을 걷는데 사람들마다 손에 종이백을 들고 다니는 풍경이 이색적이었다.

종이백엔 ‘성심당’이란 문구가 씌어 있었다.

성심당!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제빵 제과점, 바로 그곳.

0…어디선가부터 고소한 빵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절로 발길이 이끌렸다.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성심당 빵집 거리로 들어섰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우리는 다행히 오래 줄을 서지 않고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민들이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성심당’ 종이백

0…매장 안에서 먹음직한 빵을 몇개 골라 들고 우리 부부는 옆건물인 성심당 문화원으로 이동해 시식을 했다.

‍하도 유명해서 그런지 빵맛이 유난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심당 문화원은 폐업한 고시텔(1인용 초소형 룸)을 리모델링해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으로, 성심당이 문을 연 1956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0…사실 내가 대전에서 중고교를 다니던 시절엔 성심당이란 이름을 몰랐었다.

고교시절 몰래 여학생과 만나곤 했던 빵집도 있었지만 그 이름은 기억 속에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전의 성심당이란 이름이 미디어에 부쩍 자주 오르기 시작해 토론토에서도 그 이름을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해(1956년)에 성심당이 개업했다고 한다.

0…성심당의 시작은 영화 같은 장면들로 가득하다.

성심당 창업자 임길순(1912-1997) 씨는 1950년 전쟁통에 함경남도 함주에서 가족을 데리고 남으로 내려온 피난민이었다.

부인(한순덕)과 슬하의 7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던 그는 1956년 가족과 함께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다 임길순 가족은 열차 고장으로 뜻하지 않게 대전에 내리게 되었다.

0…얼떨결에 대전에 정착했으나 살길이 막막했다.

이때 찾은 천주교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오기선 요셉 주임신부(1907~1990)가 구호물자로 배급받은 밀가루 두 포대를 내주었다.

임길순은 이중 한 포대는 본인 가족을 위해, 나머지 한 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성심당의 시작이다.

0…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임길순은 아이들이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신앙심을 키우기를 바랐기에 가게를 성당 근처로 옮겼다.

상호의 '성심(聖心, Sacred Heart)'은 '거룩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성심을 지칭한다.

성심당은 개업 이래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로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나눔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매월 3천만 원 이상의 빵을 대전 시내 양로원과 고아원 등지에 기부해왔다.

2005년 큰 화재로 위기에 봉착했으나 직원들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식탁을 위해 KTX로 매일 갓 구운 빵을 배달해서 더 유명해진 성심당은 이제 직원 4백여 명이 함께하는 대전의 자부심이자 대전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EoC(Economy of Communion): 모두를 위한 경제’를 적극 실천, 한국 경제 전반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기업 경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0…현 성심당 대표인 임영진은 이따금씩 아버지의 일을 거들어주기만 했을 뿐 제과점 운영을 가업으로 여기지 않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가게가 어려워지자 장남으로서 점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직접 제빵 기술을 익히고 빵을 만들며 점포 운영을 돕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빵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어 밤을 새워 연구하는 등 열심히 공부한 끝에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숙련된 제빵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0…성심당은 초대 창업주 시절부터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모두 소진한다"는 원칙이 있었고, 따라서 팔다가 남은 빵이 있으면 전쟁 고아나 노숙인들은 물론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기부 정신은 지금까지도 성심당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역민들에겐 윤리적 경영의 우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절대 오래된 빵은 팔지 않는 집'이라는 신뢰도 함께 쌓게 되었다.

어떤 날은 빵이 워낙 잘 팔려서 남은 빵의 양이 기부할 수 있을 만큼 많지 않아 기부하기 위해 빵을 더 만들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

0…경쟁이 아닌 상생, 독점이 아닌 나눔의 경영.

대학생이 뽑은 대전의 넘버원 브랜드 성심당의 성장에는 다양한 원동력이 있었다.

끝없는 제품 개발과 업계를 선도한 마케팅 전략, 사소한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던 경영철학, 무엇보다 이웃과 상생하고 함께 성장하고자 한 남다른 경영방식이 오늘날의 성심당을 만들었다.

0…성심당은 지금도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노력한 만큼 성장할 수 있는 비전 있는 회사로 손꼽힌다.

제과업계 최초로 주5일 근무를 도입하고, 전 직원에게 매출을 공개하는 투명경영으로 신뢰를 쌓으며 이윤의 15%는 직원에게 성과보수로 지급하는 회사.

인사고과의 40%는 ‘동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평가 기준이다.

0…손님, 직원은 물론 거래처, 협력업체, 심지어 경쟁사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이’가 행복한 빵집.

이러한 경영철학을 근간으로 성심당은 가급적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고, 항상 신선한 빵을 제공하기 위해 네 시간이 지난 빵은 팔지 않으며 포장재도 친환경 종이 패키지를 사용한다.

서울은 물론 해외에서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아도 꿈쩍하지 않고 대전을 지키는 빵장수 성심당은 대전 시민의 자부심이자 로컬 기업의 훌륭한 롤모델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동네 빵집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0…성심당의 건물 외벽에는 수도꼭지 하나가 바깥으로 나와 있다.

매장 앞 포장마차들이 물을 편히 쓸 수 있도록 일부러 바깥으로 설치한 것이다.

포장마차 상인들까지 배려한 성심당은 지역 경제를 위해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영원히 대전을 지키는 빵장수로 남고 싶어 한다.

좋은 기업 하나가 어떻게 지역에 기여하고 또 함께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성심당의 사훈(社訓)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이다.

내 고향 대전에 이런 선행기업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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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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