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172)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2)>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러시아 볼가강 유람선
…결국 톨스토이는 모스코바에서 300 Km 떨어진 그의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죽음을 맞이 했고 그는 봉분도 뚜렷하지 않은 풀밭 인 무덤에서 잠들게 된다.
이렇게 톨스토이의 생애를 더듬어 보며 인간들의 욕심과 욕망의 끝은 어디일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종말은 한평 남짓한 땅에 묻히는 것이 우리네 인생 일진데 어이 그렇게 많은 것을 갖고자 노력을 하고 투쟁을 해야 하나 하는 번뇌가 나의 가슴을 두들긴다.
여기에 우리 이민사회의 형태는 어떤가를 한번쯤 생각케 한다. 이 척박한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성원하고 지도하는 사회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도 못한 면도 있어 항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잘나고 못나고 가진 것이 많아도 작아도 한 평짜리 땅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삶의 운명을 어찌하랴.
창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사스미"에 취하고 취한 나의 눈에서도 살아온 인생 여정을 뒤적이며 눈물을 흘린다.
200 불 들고 공부좀 더 하겠다고 떠나온 조국 그 혹독한 고난과 역경과 싸우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가 무엇인가? 내놓을 것 하나 없는 생애 멀지 않아 한평 남짓한 땅에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닐까.
다시 바꾸어서 땅을 보았으니 땅에 대한 투자 분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내가 본 이 땅은 산림자원 뿐만 아니라 10여만평에는 건축용자재로 필요한 GRAVEL이 몇 백만톤이 매장되어 있고 100 여만평에는 소먹이 사료 Hay를 재배하고 있으며 나머지 땅에는 울창한 산림자원이 꽉 차 있다.
간단한 생각에 산림자원은 원목으로 채벌하여 팔고 GRAVEL 은 채취하여 밴쿠버나 다른 도시에 건축용 원자재로 팔고 자작나무는 유럽에서는 구하지 못하여 사용을 못한다니 유럽에 가구용으로 수출을 하고 조국의 가난한 사람들 50 여 가구를 모셔와 원예던 채소던 목장이던 어떤 것이던 경영을 한다면 이 황무지 같은 기름진 땅은 빛을 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좁은 땅덩이인 조국의 현실을 본다면 이 500 여만평이 대한민국의 땅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종착역은 톨스토이 같이 한 평 남짓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모든 의욕과 욕망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부서지고 만다.
우리네 인생이 갈 길은 어디일까 사(死)의 찬미를 부르며 현해탄에 돈도 사랑도 명예도 다 싫다며 생을 마친 윤심덕이 떠오른다. 한 평 정도에 묻히는 육신인 것을 알면서 오늘도 어제도 허덕이고 있는 나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허욕의 야심 때문에 죽어간 "바흠"의 생애와 자기의 생애를 참회하고 죽을 것을 예감하며 한평짜리 땅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종말을 예언한 소설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톨스토이"의 생애를 한번쯤 재조명 해보고 싶다.
이에 행복이란 무엇일까 구하고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욕망과 야심과 불만을 없에고 겸허한 마음으로 참회하며 절제하는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레프 니골라예비치 톨스토이" 그는 떠날 때까지 참회의 길을 걸으며 살아왔음에 나의 심금을 울려준다. 그의 "인생론과 참회록"에서 전세계 인류를 향해 방사된 사랑과 헌신의 진리의 빛은 번민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무한한 생존의 보람을 안겨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제8회 민초해외동포 문학상 대상 수상자 러시아의 엄넬리 교육학 박사가 영예를 안게 되어 내 생애에 제일 멋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의 처와 같이 볼가강을 바이킹 유람선을 타고 러시아 내륙을 10일간 여행한 것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여행 중에서 도스토애브스키의 문학관을 관광을 하고 그 웅장하고 찬란함에 놀란적이 있었다. 평소에 톨스토이의 문학관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의 생가를 찾고 그의 무덤을 보고 다시 한번 감격을 느꼈다.
몇 천에이커의 그의 소유의 땅 조용한 곳에 묘비도 없는 그의 무덤앞에 장미꽃 한송이 놓고 묵념을 한 기억이 새롭다.
톨스토이의 생애의 멋은 대문호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생애를 통해 게속 반성하고 참회하고 인류를 사랑하면서 살아왔으며 항시 겸허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왔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절제된 삶을 영위하면서도 어느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치도 않으며 그의 일생을 마친 인격을 흠모 하지 않을 자 이세상에 있으랴. 톨스토이의 명복을 빌고 있는 이 낭인 시인이 있음은 톨스토이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결론을 맺는다.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31일 가출하여 "야스타포프 역에 하차 역장의 집에서 서거했고 그의 나이는 82세였다.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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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