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179)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와 작품>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Emily Dickinson(December 10, 1830 – May 15, 1886)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만약 내가 한 애타는 마음 멈출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만약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고,
한 괴로움을 달래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상기 작품은 <디킨슨>의 대표적 작품으로 만약내가 <If I can> 으로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진 작품이다.
19세기에 활동한 미국의 여류 시인으로 미국 역사의 근대 시인에서 빠질 수 없는 시인이며 저명한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19세기 미국 문학의 중심적 대표적 인물이란 평을 했다.
블룸은 그녀는 지난 4세기 동안 등장한 서양 시인들 중 가장 독창적인 정신으로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깊은 감상에 잠겨 든다고 했다.
그녀는 변호사이자 정치가이며 대학의 이사였던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 와 에밀리 노크로스<Emily Norcoss>의 사이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고향인 매사추세츠주 에머스트에서 보냈다. 이로 인해 그의 문학관 박물관도 에머스트에 세워져 있다.
또한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열린 문틈으로 걸어다니는 디킨슨을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다.
이런 은둔생활을 하게된 원인은 악화된 시력은 물론이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책임,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의 차이, 식구들 간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했던 것 등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탓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는 생애에 걸친 몇 번의 정서적 위기를 들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 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특히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오티스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사망하자 실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었고, 2년 후인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였다.
그녀의 삶의 특징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 희망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 <마운트 홀리요크 칼레지에서> 신학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성서보다 문학 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는 독서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어서 시 작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디킨슨의 삶과 자아 탐색은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실제로 접촉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첨단의 지성을 갖춘 지식인들과 시를 교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였던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자신의 시가 출판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결론으로 그의 생애를 뒤돌아보면 생전에는 본인의 요구에 의해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시를 발표하지 못했지만, 사후 동생 <러비니아 디킨슨>에 의해 44개의 시 꾸러미가 발견되었다.
1890년, 1891년, 1896년에는 평생에 걸쳐 디킨슨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왔던 비평가 겸 작가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Mrs. Todd)>의 주선에 힘입어 2천여편의 시가 3권으로 나누어출간되었으며, 1894년에는 2권의 시 서간집이 출간되었다.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정받기 시작했고, 1955년 <토머스 존슨(Thomas H. Johnson)>에 의해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55년 5개월의 짧은 생존에도 그 녀는 겸양의 삶으로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음은 화자에게 큰 귀감이 된다. 화자 역시 항시<있는 듯 없는 듯한> 삶으로 살아간다는 좌우명으로 살다가 흙이 되리라는 생각, 나아가 시를 쓰는 작가의 반열에서 카타리스적 자존을 세우고자 <무명의 유명시인>으로 남에게 대접을 받기를 좋아함은 디킨슨의 생애를 생각하면 넌센스인 것 같다.
위선의 울타리에 갇혀서 오늘도 화자는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 허영 속에 이글을 쓰고 있음에 자학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에 십여년 전 어느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류가 출간한 시집, 이 시집과 같은 순수미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출하지 못함에 한탄을 함은 왜일까를 더음으며 낭인의 생존을 슬퍼할 따름이다.
첨언으로 그 녀의 생애는 화자가 읽은 디킨슨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여기저기에서 읽은 그녀의 생존을 화자의 상식으로 분석하여 기록하였음을 밝힌다.
2026년 1월 5일 민초 이유식(한인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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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