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 186

<민들레 흰 머리털은 나에게 한만 남기고?>

민초 이 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유 인형 文友의 作故 14년 주기를 맞이하여>

*2013년 작고한 고 유인형 문우가 보내준 민들레 꽃뿌리

주: 14년 전 떠난 벗을 그리니 해 마다 민들레꽃은 피고 그 꽃이 흰 머릿털을 흔들며 우주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영원히 잊지못할 그리움을 남긴 벗의 모습이기에 초춘의 양광이 온누리를 빛추면 밤낮으로 저의 동공에는 눈물이 고인답니다.

이 꽃은 나의 벗 유 인형 문우의 상징입니다. 하기 사진에서 보여주는 민들레 '뿌리입니다. 벗이 생존 중에 매년 이 풀뿌리를 뽑아서 13년을 소포로 저에게 붙여 주시던 건강식품입니다.

이제 문우가 가신지 14주기를 맞이함에 2013년 마지막으로 보낸 그 풀 뿌리를 고히 간직했는데 저의 건강도 많이 쇠퇴하였기에 여기에 공개를 해봅니다. 하기의 글은 3년상을 마칠 때 제가 쓴 마지막 벗을 그리는 조사입니다.

어이 이리 믿기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하도 믿기지 않아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마구 떨구어 봅니다. 월여 전 전화에서 나는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다는 말을 하며 요사이 생활이 즐겁다는 근황을 말했습니다.

건강은 어떠냐는 저의 질문에 이제는 거의 완치가 된 것 같다며 아침에 산책하고 코스트코에 가서 식품 좀 사면 오전 시간이 지나가고 오후에는 오수를 즐기고 웨스트 에드몬톤 몰을 한바퀴 돌며 한두명의 친구와 어울려 차 한잔을 하고나면 서산에 해는 저물어 가지, 허허 어이 이리 하루가 빠른지 어제같은 나날을 살아왔는데 벌서 70을 훨 넘어섰으니 인생살이가 참 허무롭다.

수술 후의 건강을 걱정하는 저에게 도리어 저의 건강을 염려하시던 그 목소리! 이제는 그 털털하고 허스키하게 심금을 울려주던 농 익은 막걸리같은 목소리를 두번 다시 들을 수 없어 患弟는 말문이 막히고 눈물만이 원고지를 적신 답니다.

수년 전 生과 死에 대한 농담을 하다가 仁兄은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면 민초가 나를 위한 弔辭를 써서 나의 영전에 바쳐주고 민초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면 내가 민초의 영전에 조사를 바치겠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말을 했었지요. 우리 99살을 88하게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 무엇이든 다 하며 살다가 떠나야지요 했더니 민초는 참 욕심이 많아 이제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근력이 있을 때 여행이나 하면서 소일하라는 충고를 하셨지요.

그런데 오늘 늦은 밤 인형이 먼곳으로 영영 못오실 길을 떠나셨다는 부고를 받고 그 황망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실에 말문이 막혔었답니다. 장례식장을 찾아 마지막 영전에 조사를 하고 실컨 울어나 보자는 생각도 일순간. 입관식도 장지도 알려주지 않았음에 남은 분들을 탓하며 그 밤을 넘겼었지요.

경황이 없는 가족들의 애통함도 일시 잊으며 벗의 도리를 못한 이 못난 사람이 하 한심하여 자책을 했답니다.

仁兄은 언제나 저의 이민 생활을 보시며 항시 격려와 지도를 아끼지 않으셨지요. 제가 동포사회의 정화를 찾아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큰 동네에서 큰 일을 해야할 사람이라며 안타까워 하시던 말씀 끝 없는 과찬을 아끼지 않고 성원해 주시던 仁兄, 형은 저에게 너무나 많은 정을 주시고 떠났습니다. 그 태산같은 정을 어떻게 값으라고 이렇게 훌훌히 떠나 가십니까.

아무런 정도 베풀지 못해왔고 항시 현실의 삶에 급급한 患弟에게 십수년을 민들레 뿌리를 채취하여 소포로 보내시며 이 민들레뿌리는 肝을 좋게하고 감기예방과 소화기능 촉진에 제일이라며 공해없는 곳에서 채취를 했으니 마음놓고 차를 끓여서 마시라 했습니다.

어이 그 뿐입니까. 제가 혈압이 높아 고생을 한다하니 深山을 찾아가 솔잎을 따서 보내며 깨끗한 솔잎이니 위스키에 3,4달을 담그었다가 소주잔으로 한 잔씩하면 혈압을 치유할 수 있다며 솔잎사용 처방문까지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어 주셨습니다.

형제간이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仁兄은 이 民草를 위하여 온갖 사랑으로 아껴주셨습니다. 이 많고 많은 사랑의 빚을 어찌 값아야 한답니까. 언젠가 나름대로 명분있게 仁兄의 빚을 값아야 되겠다는 저의 計劃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답니다.

장례식을 마친 하루 후 이른 아침 형수님이 전화가 와서 민초 선생님께 진즉 알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형수님의 전화를 받고 한마디로 원망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모든 면으로 경황이 없으리라는 것을 이해를 하면서도 왜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는 힐책아닌 원망을 했습니다.

저의 욕심이지만 떠나시기 전 한번만이라도 인형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 한번만 이라도 더 손을 잡지 못한 이 서운한 죄책감을 어찌 하라고 그렇게 매정하셨는지. 남은 자의 애통함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렇게 가셔야 한답니까.

앞으로 남은 저의 인생 30 여년의 우정의 짐을 혼자 지고 살아야 하는 민초의 업보를아시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우정도 인간 관계의 정도 하루 이틀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통감케 해 줍니다.

인간관계의 정을 공유하고자 해도 우리의 삶은 한쪽의 정과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무엇을 공유했기에 이 산 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만나 30여년의 우정을 공유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사함을 새겨 보니 이는 仁兄의 하늘과 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깊은 사람냄새가 민초를 감동케 했으며 언제나 양보하고 배려하는 仁兄의 끝 없는 미덕이 있었기에 민초의 삶도 윤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더 더욱 님을 그리는 마음은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仁兄! 부디부디 永眠하십시오. 누구나 한번은 가야하는 길 그 길을 피할 수 없슴은 생과 사의 섭리이니 어이 우리가 이를거역할 수 있으리요만 넓고 넓은 마음 깊고 깊은 인정과 삶에대한 지혜와 높은 경륜을 다 가지고 떠나신 인형 그저 보고 싶다는 말 만하는 이 멍청이를 어이 하시렵니까.

이제는 로키산맥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깨끗한 물소리도.산 짐승 노래하며 산양떼들이 춤을 춘다는 인형의 새 수필도 읽을 수 없슴에 캐나다 문인들과 독자들은 어느 누구나 그 서러움과 안타까움을 삼키고 있습니다.

님이여! 편히 쉬소서.

이 아비규환과 같은 현세를 떠나 그 곳 멀고 먼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잠드시기를 바라며 눈물을 닦으려 합니다.

존경했고 사랑했던 나의 벗 유 인형 문우의 영전에.

2013년 8월29일 밤 2시에 두 손 모아 바칩니다.

민초 이유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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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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