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 185
*<잊을 수 없는 향내, 문학의 집 김 후란 이사장>
민초 이 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김후란 이사장
가을로 접어드는 은행잎이 물들어가는 초추의 서늘한 바람이 나의 귀 밑 머리털을 아련히 흔들리게 하는 오후 1시였다.
남산의 소슬 바람이 언제던가 그 옛날 남산길을 오르던 추억의 오솔길이 주마등 같이 떠오른다. 배 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흥얼흥얼하며 8천여평의 대지 위에 3,4동의 크고 작은 빌딩을 자랑하며 남산골 계곡에 서 있는 제일 큰 빌딩을 찾아갔다.
이날은 나의 자전적 칼럼집 <뿌리>를 출간한 연인이라는 월간 문학지 가을 신인 문학상 시상식 날이였다. 대강당 일호실에는 200여명의 하객과 내빈이 자리를 같이 했다.
나의 정해진 자리는 내빈석이었다. 한국문단의 거목들 연인 신 현운 발행인들과 특별한 분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나의 옆 좌석에는 문학의 집 이사장 김 후란이란 분이 앉으셨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읽었던 한국문단의 3대 여류시인이란 분의 옆에 앉게 되어서 신 현운 발행인의 특별한 배려로 나의 좌석이 정해졌음을 생각하였다. 김 후란 이사장이 나의 옆에 앉으며 인사를 하기에 처음 상면을 했다. 별써 9년의 세월은 흘러갔다.
책에서만 읽던 3대 여류 명사이신 유 안진 교수, 김 후란 시인, 그리고 신 달자라는 3분 중 신 달자 시인만 상면을 못하고 이제 2분을 직접 만날 수 있었으니 기뻤다.
김 이사장의 첫 인상은 젊음을 자랑하는 어느 부유한 재벌집 안주인 같은 인자한 모습이였다. 책에서만 읽었던 여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의 인사는 간단했다.
가져갔던 졸작에 싸인을 하여 드린다는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후학을 잘 지도해 주십시오. 이에 졸작을 훌터 보시더니 잠시 실례하신다며 자리를 비우셨다.
10분 후에 3권의 자작 시집을 만남의 기념이라며 주셨고 이날의 만남은 중식을 겸한 신인작가들에게 문단 등단패와 작가 소개 내빈의 축하 인사로 끝을 맺었다.
이틀 후에 신 발행인이 김 이사장이 오찬 식사 초대가 있다하여 기꺼히 두번째 만남을 주선하셨다. 이때 김 이사장은 문학의 집의 이사장이 되신 간단한 설명을 하셨다.
요약을 하면 이 땅과 건물은 서울 시청이 주인이며 운영은 주식회사 유한양행이 50%,서울시청이 35%,문학의 집 이15% 운영비에 투자 하는 조건으로 서울 시의 요청에 의하여 문학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본인이 운영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무엇이고 경비가 소요되는 단체는 운영을 해 본 경험이 없는데 난관이 많았다 했다. 그러나 문학을 애호하는 독지가들의 후원과 성원으로 지금까지 많은 해를 잘 운영해 오고 있다는 간단한 말씀이었다.
이에 자기가 담당하는 포숀 15는 회원들 회비와 건물 렌트비 등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현재 문학의 집 회원은 500여명으로 수시로 문학에 관한 세미나, 작품 발표회등 기타 경비의 수익금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씀 하셨다.
현재 문학의 집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자문위원이 4명으로 이 어령 박사, 김 남조 시인, 예술원 회원 중 조각 분과위원장, 문화 예술 분과 위원장과 당연직 위원인 자기를 포함 5인이며 매 분기회의를 열며 운영 전반과 한국의 순수문학을 외국에 널리 홍보하며 노벨 문학상을 배출하기 위한 장려등의 후학 양성에 노력을 하고 있다 한다.
현재 이 어령 박사 등 자문위원들의 노력이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음 주말에 출국을 하며 탁란의 생활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농담과 다음해의 제가 운영하는 민초해외동포 문학상의 수상작품을 골라 주시고 심사위원장이되어 심사평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나라가 할 일을 한 개인이 하고 있슴에 찬사를 하신다는 말씀과 온갖 희생을 함에 격려를 하신다는 말씀과 무엇이던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열과 성의를 다해 도와 드리 겠다는 자상한 말씀을 해 주셨다. 그로부터 3번의 심사위원장으로 필자를 격려해 주셨다.
그 후 귀국할 때마다 뵈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한번은 너무나 과분한 요청을 하셔서 사양을 했었는데 내용인 즉 이 어령 교수등 자문위원이 되어 자주 만나며 문학의 집 운영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셨다. 이에 필자는 그럴 자격이 못된다며 극구 사양을 한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한두번을 더 이 문제를 말씀하셔서 참 난감하여 사양을 하며 어떻게 저 같은 후학을 생각하시느냐 물었더니 해외동포 7백만 중 한분을 선정하고 싶은데 문학에 대한 열정과 조국애와 민족애가 투철한 해외동포 중 당신이 적합하여 이사회에 상정 통과를 보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필자가 필자 자신을 잘알기에 그 조국의 최고의 석학들과 같은 자리에서 희의를 함은 너무 과분하기에 사양에 사양을 했던 기억은 김 이사장님께 큰 결례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제 이 어령 박사, 김 남조 시인 등등은 저 세상으로 가셨고 필자는 필자 혼자서 후학을 배려해주시고 문학인으로 키워 주실려고 마음을 쓰시던 김 이사장님께 받은 사랑이 마음 속에 잠자고 있어 이 글을 남기며 필자의 건강상 몇년을 문후드리지 못한 마음을 남겨보며 다음 귀국 길이 있으면 제일 먼저 문후를 드릴 생각을 해본다.
민초 이 유식(한인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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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