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 181
<김 덕선 장로와 김 덕수 대령 , 장로님 추모>
민초 이 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고 김덕수 대령.장로님의 장례 예배
2만5천 여명이 살고 있는 서부 캐나다 동포사회에 곡소리 들린다. 아마 이 때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오호!애재라는 말 밖에 적합한 말은 찾을 수가 없도다.
동포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활을 하시던 두 분 큰 별이 우리 곁을 떠났음을 어이 잊으랴. 병오년 2월 6은 동포사회의 기업 경영의 표상이시던 김 덕선 회장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어 2월 7일에는 6.25 참전 용사로 오늘의 조국번영의 터전을 닦으신 고 박 정희 대통령을 뒷받침하시던 김 덕수 대령의 장례예배가 있었다. 장황한 말씀은 다음에 밝혀진 위 두분의 업적을 읽으시면 독자분들은 충분히 이해가 가시기에 생략을 한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주에는 캘거리 동포들에게 표상이고 자랑이신 김 덕수 대령,장로의 생애를 더듬어 본다. 조국의 안보와 후세대의 안락한 삶을 염원하시던 님의 일생은 군 생활에서 모든 생을 받쳤음이 그의 약력에서 보여준다.
그 분의 간단한 약력을 보면 1927년 출생,/ 명문 서울 고등학교 3회 졸업생으로 학도병으로 참전 / 1950년에서 53년 까지 조국 방어의 최 일선에서 북한군과 싸워온 6.25참전용사로 육군대위로 전역/ 1957년 허 영숙 여사와 결혼, 1남 2녀 / 정부 특사 및 문화사절단 대표로 중남미 근무/ 아르젠티나, 파라과이 주재 대사관 무관 / 브라질 안기부 공사 총무국장./ 안기부 강원도 지부장 역임/ 경희대학교 기획조정실 사장으로 근무 은퇴./ 즉 1957년에서 2002년까지 정부의 온갖 공직으로 기여/ 2003년 캐나다로 이주(레스부리지에서 생활)/ 2006년 캘거리로 이주/ 캘거리 서울 고등학교 동창회 회장/ 2026년 2월 1일 향년 96세로 소천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필자가 김 장로님과 교류한 추억은 5년 전 노인회의 월례 식사 모임 자리였다. 그때 필자는 은둔 상태에서 문인협회의 모임에만 참석을 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글과 말을 우리 후세대들에게 전수할 수 있을까 하는 일에만 온갓 정력을 쏟고 있을 때 였었다.
안 길웅 노인회장과 이 석철 친구등의 권유에 처음 노인회 식사자리에 참석을 했었다. 별로 아는 사람도 없이 한쪽 끝에 몇몇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항시 존함과 업적을 흠모하였던 김 장로님이 저의 곁으로 오셔서 처음으로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미스터 이 집에만 있지 말고 가끔 이렇게 만나 얼굴도 보고 여담이나 나누면서 살아가면 좋지 않소하시며 다음부터는 노인회 모임에 꼭 참석을 하라는 약속을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나와 약속을 하라는 맘씀을 주셨다.
꼭 참석을 한다고 약속의 말씀을 드렸더니 모임 참석하여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노인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잊을 수 없어 그 후부터 지금까지 이 민수 회장을 거치며 5년째 노인회 모임에 참석을 하고 있다.
장로님은 침례교회에 나가시나 필자는 아직 신을 영접하지 않았기에 항시 낭인이니 탁란이니 하는 객기가 쌓인 말을 하며 살아가는 부끄러움이 있다.
그 후 노인회 모임이 있을 때 장로님은 한두번 식당에 먼저 오셔서 이 낭인의 좌석도 잡아놓고 옆에 앉아 이야기를 하자는 말씀을 주신 후대를 아껴주시는 마음을 잊지 않으셨다.
하루 전에는 기업 경영의 선구자이며 후세들에게 표상이시던 김 덕선 장로님의 장례식, 하루 후엔 조국과 민족애로 일생을 바치신 김 덕수 장로님의 장례예배에 참석하니 만감이 교차하며 인간의 일생이 참 허무롭다는 상념이 나를 괴롭힌다.
이날 장례예배는 명쾌한 설교로 유명하신 김 형석 목사의 <주님이 예비하신 집>에 대한 명 설교에 이어 이 봉우 집사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와 고인의 외손자 최 정호,최 진호의 조사는 장례식에 참여한 하객의 마음을 한결 애잔하게 하였다.
필자의 생각에 살아가는 방법중 중요한 덕목은 정을 나누었던 사람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 영원한 정과 사랑을 간직할 수 있는 기술의 연마를 지속함에 있으리라는 마음이다.
가끔 나대로의 생각은 인생살이의 슬프고 기쁜 모든 문제의 시작은 애증에서 시작되는데 이 애증의 출발은 가까운 사람 가까이 정을 나누었던 사람간의 이해력과 믿음에서 파생된다는 생각이다.
즉 사랑하고,증오하고,용서하고,모함하고,시기하고,저주하고,화해하며 살아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생노병사의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이 인생의 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즉 부모간이나 혈육간의 핏줄의 정은 기쁨을 만끽할 때도 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슬픔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슴을 어느 누구도 부인치 못하리라는 생각이다.
저는 이제 잡다한 서설 생략하고 김 덕수 장로/대령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안타까움에서 졸작 추모의 시 한편을 남기며 애도의 뜻을 전할까 합니다.
추모 시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
님을 흠모하고 존경을 했습니다/ 탁란의 생존의 서러움도 아니였고/ 배 고픔의 절규도 아니 였습니다/
님의 일생이 조국애 민족애/ 차 세대에게 남겨준 업적에/ 머리 숙여 격려와 지도가 되었습니다/ 님의 인자 자상하신 정감의 마음은/
차 세대에게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음을 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님은 이 삭막하고 어려운 세파와/ 조국의 걷 잡을 수 없는 위난의 현실을 알면서도/ 님은 우리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득한 지평선과 해원이 마주친 그 먼 곳으로/ 님은 가셨기에 차세대들은 눈물이 마르지 않으나/ 생 노 병 사의 신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기에/
님이 가시는 길에 명복을 빌고 또 빌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님이 남기신 발자욱을 그리며 / 외롭고 고난의 삶을 영위하는 생존이라도/굳세게 살아 갈 것입니다/
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으시고/ 영생의 그날을 기원드립니다.
병오년 2월 7일 민초 이 유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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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충남 대전/ 고려대 영문과/ 해병대 장교(중위)/ 현대상선/ 시사영어사(YBM) 편집부장/ 인천일보 정치부장(청와대 출입기자)/ 2000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부사장/ 주간 부동산캐나다 사장)

